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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공생의 지혜, 다시 보는 ‘두레 문화’

작성일
21-04-05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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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의 지혜, 다시 보는 ‘두레 문화’ 한국인들은 ‘고향’이라고 하면 대부분 어머니의 품과 같은 농촌마을의 정취를 먼저 떠올린다. 또한, 고향마을 삶의 여러 모습들도 되살아난다. 예컨대 원두막이나 정자, 사랑방과 장승, 빨래터나 물레방앗간, 초가와 기와집, 동구 밖의 장승과 선돌, 상여 집과 방앗간, 당산나무 같은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물레방아에 대한 정서라든가, 철따라 이루어지던 농작물 훔치기, 풍년을 기대하며 펼쳤던 다양한 민속적 기원들, 이들 모두 마을 생활공동체 문화가 배어 있는 귀한 모습이다. 이런 것이 바로 전통문화의 모습이다. 01.공동체의 더불어 사는 삶을 볼 수 있는 농번기의 두레

농부들이 만든 ‘두레’의 전통

한국의 문화를 상징하는 여러 요소 중 ‘두레 정신’은 한국인들의 의식 밑바탕에 도도하게 자리 잡은 생활문화이자 지혜라고 할 만하다. 고향 농촌마을의 문화를 들여다 볼 때마다 되새겨지는 공동체 문화의 전통인 두레는 우리의 전통마을, 촌락공동체 문화를 상징하는 공생(共生)의 삶이다.


‘두레’라고 하면 흔히 풍물 굿을 치고, 같이 농요를 부르며, 함께 일하는 장면을 연상한다. 물론 그 같은 외형도 주목되지만, 더욱 귀중한 것은 마을 주민들이 같이 살아가는 ‘모듬살이’의 정신과 지혜로 어려울 때 더욱 빛이 났던 조직이 바로 두레였다. 개인보다는 마을의 공동체를 우선하는 정신, 어려운 사람과 약한 사람을 배려하는 정신, 희노애락을 공유하는 정신, 그것이 바로 한국의 두레가 지닌 독특하고 귀한 가치들이었다.


두레 정신은 오랫동안 마을 생활의 경험과 현실 속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신들의 실정에 맞게 정착되었던, 어쩌면 풋풋한 농부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터득한 지혜였다. 두레 구성원들은 마을에 같이 살면서 함께 매일 서로 만나 살을 맞대며 살아왔던 농사꾼들이었다. 이들은 피붙이보다 진한 끈으로 맺어져 어려운 일은 서로 돕고, 일상의 의례와 행사, 공동의 노역을 하며 살아왔다. 두레는 이론과 객관적, 합리적 논리라든가 제도로써 이 땅에 뿌리내렸던 것이 아니라, 그저 눈만 보고 숨소리만 들어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만큼 다정하고 끈끈한 인간관계(情)가 바탕이 된 것이었다.

02,03.민초들이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긴 흥겨운 백중놀이 ⓒ국립민속박물관 04.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며 다함께 즐긴 평택농악 ⓒ문화재청

두레에서 배우는 모듬살이의 지혜

대체로 두레 조직의 범위는 하나의 마을을 기본으로 하지만, 아주 큰 마을은 몇 개의 두레가 결성된 경우도 있고, 작은 마을의 경우는 수 개의 인근 마을이 합두레를 짜기도 하였다. 두레는 마을에 거주하는 청장년으로 ‘들독들기’라고 하는 흥미로운 신입례를 이를 통하여 노동력을 인증 받아 참여할 수 있었고 인원은 10-50명으로 구성되었다.


두레는 물론 공동노동, 생산조직이라는 1차적인 목적을 가지지만, 모듬살이와 공동체의 다양한 모습들도 보여준다. 먼저 두레의 대동회의가 주목되는데, 이는 마을 주민자치회의이자 한 해 살림살이를 결정하는 회의였다. 두레 회의는 두레꾼의 집회소인 농청(農廳), 도가(都家)에서 2월경에 농사 준비회의가 이루어진다. 여기서는 1년 농사의 대소사를 결정하였다. 즉 두레의 재조직 및 역원선출, 신입례와 신참례, 농사 순서 결정, 두레 셈의 기본원칙 확인, 농악기나 보수, 품앗이와 품삯 결정, 호미모듬 의례준비 등이었다. 농사 후의 두레 회의는 한 해의 결산, 상호부조, 농악기 보수, 마을 살림, 마을의 대소 공사(길닦기, 풀베기) 해결 등이었다.


의사결정은 완전히 민주적인 방법으로 진행되었고, 과부, 노인, 환자가 있는 집안이나 어려운 환경의 농사를 두레가 거들어 주고, 마을 전체적인 노역에 인력을 제공함으로써 공동체적 삶의 유지를 우선으로 하고 있다. 또 특별한 두레의 공동행사로 ‘호미모듬’, ‘호미씻이’가 있었다. 두레꾼들이 한자리에 모여, 음식과 술을 먹고 농악에 맞추어 여러 가지 연희를 곁들여 뛰고 놀면서 결속을 재확인하는 의례이자 행사였다.


호미모듬은 두레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두레꾼들이 농청에 모여 역원을 선출하고 공동의 조직을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작업을 준비하는 날 각각 자기의 호미를 한 개씩 농청에 모아 거두는 의식이었다. 호미씻이는 호미걸이라고도 하는데 두레 최고의 축제로서 일 년 농사가 마무리 되는 음력 7월 15일을 전후하여 하루를 잡아 온 마을 주민이 모여 놀던 농경세시 행사였다. 한편 두레꾼의 공동 작업인 제초 작업이 끝난 후에 모여서 놀고 먹는다는 의미의 풋구(풋굿), 초연(草宴), 두레먹기, 머슴잔치로도 부르던 ‘두레잔치’도 있었다.


농기와 기세배도 주목된다. 농기인 두레기는 마을의 자긍심이자 두레의 상징, 표상이었다. 흔히 농기라 부르지만, 지역별로는 용당기, 덕석기, 서낭기, 대장기, 농상기 등으로 다양하게 부른다. ‘농자천하지대본’, ‘신농유업(神農遺業)’ 등의 글자와 용의 그림이 그려지기도 한다. 용은 수신을 나타내는 것으로 논농사 지역의 관행이다.


두레가 생긴 시기나 규모에 따라 형과 아우 두레의 서열이 있어 기세배 놀이도 하고, 서열대로 인사를 하고 행렬을 이어간다든가, 북을 둥둥 쳐서 상호 인사를 하는 관행도 여러 곳에서 조사되고 있다. 한편 사당패가 마을에 놀이판을 만들 때도 먼저 두레기에 인사를 드려야 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말을 탄 양반들도 두레기 앞을 지날 때는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말에서 내려야 했다는 기록을 보면 조선 후기 두레의 위세와 반 신분적 성향과 위상이 짐작되기도 한다.

05.충남 연산 지역에서 전승되는 연산백중놀이 ⓒ문화재청 06.경남 밀양에서 이어오고있는 밀양백중놀이 ⓒ문화재청

다시 보는 두레 정신의 현대적 가치

한국의 두레 정신 속에는 순박하고 참으로 인간적인 농촌사람들의 숨소리와 곰삭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고,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담겨 있다. 두레는 어떻게 보면 이론과 합리적 논리, 법제보다 눈빛과 숨소리만으로 만들어진 ‘모듬살이의 지혜’이자, ‘공생(共生)의 지혜’였다. ‘두레’는 또 철저한 분담을 강조하는 현대사회와는 다르게 공동체를 위하여 자기를 희생할 줄도 알고, 이해와 타산을 내려놓을 수도 있었다. 가진 자가 몇 배를 더 부담하는 전통도 정착시켰다. 그래서 못 가진 자, 어려운 자, 외로운 자들이 더불어 공동체적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전통마을이 하나 없어지면 박물관 하나를 잃는 것과 같고, 노인 한 분이 돌아가시면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 200-300년 명맥을 이어온 전통마을이 수몰되거나 없어지면 마치 민속박물관 하나를 잃는 것처럼 생각되고, 70-80세의 노인이 돌아가시면 작은 도서관 하나가 없어진 것과 같다고 하는 이유는 삶의 문화와 생활지혜가 사라진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정말 아쉽게도 이러한 전통마을의 ‘공생과 자율’의 문화전통들은 현대사회에서 거의 소멸되었고, 개인주의와 경제적 이해, 법치로 이기적이며 경쟁적 우위를 점유하려는 태도가 일반화되어 있다. 생활과 문화 공유의 인간적 감성보다 이해타산적인 사회가 되고 있다. 과거와 다르게 현대사회가 그렇게 바뀌었으니 옛날의 두레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할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레 정신은 나날이 각박해지고, 이기적인 현대사회에서 더욱 필요한 공생과 생명력의 원천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두 정신은 우리가 현대에 다시 ‘이어가야 할 자존심’, ‘지켜야 할 전통문화’라고 강조하고 싶다. 이들 전통의 공동체 문화가 지닌 의미와 가치가 되찾아지고, 되살려졌으면 한다.



글. 이해준(공주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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